제목 스타베팅 이용후기
작성자 스타
작성일자 2023-09-23
조회수 48
준마 시승식은 가벼운 속보부터 시작했다.

승마는 말과 주인 사이의 교감이 중요한 운동이라 서서히 단계를 높이며 서로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하지만 워낙 영리한 말들만 선별한 데다 그 말을 모는 자들도 하루 이틀 몰아 본 실력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금세 서로의 성격과 버릇, 심지어 컨디션까지도 파악해 냈다,

말을 탄 사람들은 이제 속도를 높여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신나게 질주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속도를 올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달리지 않으면 아무도 달릴 수 없었다.

“폐하.”

리즈는 등짝에 고스란히 와 닿는 안달 난 시선을 느끼고선 헤르시스에게 말했다.

“이젠 좀 달리셔도 되지 않겠어요? 다들 저렇게 원하는데.”

“신경 쓰지 마. 그러든 말든.”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등 뒤가 따끔거리는데.’

리즈는 그가 자신 때문에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달려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서 관두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면의 뭔가가 자신이 박차를 가하지 못하도록 발을 꽉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헤르.”

리즈의 다정한 부름에 헤르시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리즈가 자신을 저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제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준비 행동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마음먹고 고집을 부리면 종내엔 제가 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저 놔두고 저 사람들하고 같이 달리세요.”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싫은 거 아니잖아요.”

“…….”

헤르시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사실이었으므로. 그는 리즈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제 안의 질주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가세요. 가셔서 마음껏 기마 실력을 뽐내고 오세요.”

“그 또한 말한 것 같은데. 그딴 것 없이도 나는…….”

“알아요. 당신 능력 있다는 거. 하지만 능력은 증명해 보이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이건 단 몇 시간, 아니, 몇 분 안에 끝나잖아요. 얼마나 간단하고 효율적이에요? 안 그래요?”

“…….”

이샤르는 헤르시스의 뒷모습만 보았는데도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얘기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그럼에도 제 주군이 팔푼이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황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바로 저렇게 미묘한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 그녀, 리즈를…….

“그러니까 얼른 달려요. 얼른요.”

리즈의 말에 헤르시스가 더는 자기 자신을 기만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알았어, 그럼 막사까지 데려다줄게.”

“데, 데려다주긴 어딜 데려다줘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리즈는 말 머리를 돌리려는 헤르시스를 황급히 만류했다. 이샤르가 여기에 힘을 보탰다.

“황후 폐하의 말씀을 들으시지요. 막사는 코앞입니다. 오히려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게 황후 폐하를 더 곤란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헤르시스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를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는 수십 명의 대귀족들 너머로 크림색 막사 지붕이 보였다.

막사는 돌아가는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이상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

“얼른 다녀와요, 헤르.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리즈가 헤르시스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헤르시스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는 말이었다.

“스물까지만 세고 있어.”

헤르시스가 말했다.

“그 안에 돌아올게.”

리즈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우승하세요.”

“그건 당연한 거고.”

그의 밉지 않은 오만함에 리즈가 픽 웃었다.

리즈는 그 자리에 서서 헤르시스가 고삐를 크게 휘두르며 말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제껏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그러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질주 본능을 억누르고 있던 정복자의 후손들이 마음껏 욕구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리즈는 자신 주변으로 개떼처럼 달려 나가는 말과 기수들을 보며 나지막이 읊었다.

“하나, 둘…….”

사람들은 순식간에 실눈을 뜨고 봐야 할 만큼 작아졌다.

“셋…….”

리즈는 말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막사로 돌아가기 위해 천천히 말을 몰았다.

“넷…… 다섯…… 여섯…… 일…….”

일곱을 막 세려 할 때였다.

“……!”

돌연 말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멋대로 숲길에 접어들었다. 모두 열을 세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반환점이 코앞이었다.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질주였다. 다른 이들은 얼마나 뒤에 있는 건지 발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 달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군.”

헤르시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정복자의 후손, 정복자의 후손, 하더니만 고작 이 정도라니. 허탈감이 들었다.

숙부를 초대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랬다면 적어도 시시하진 않았을 텐데…….

그때였다.

귓속을 삐익-, 울리는 기분 나쁜 이명에 헤르시스가 말을 멈춰 세웠다.

이명이 편두통을 동반한 까닭에 그는 손끝으로 한쪽 관자놀이를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이샤르가 주군을 발견하곤 멈춰 섰다.

“잠깐 두통이 일어서.”

“두통이요?”

헤르시스에게 두통이 있다는 말을 이샤르는 이제껏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주군을 살피는 사이, 땅을 두드리는 수십 개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황족과 대귀족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샤르가 조급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하기 힘드시겠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일단 하던 건 마저 하시죠. 어차피 의원도 막사에 있으니까요.”

“…….”

하지만 헤르시스는 쉽사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샤르는 조바심이 났다.

“지금 달리셔야 합니다, 폐하. 안 그러면 선두를…….”

빼앗긴다고 말하려는 순간 빼앗겼다.

에르윈이 그들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둘, 셋…… 다섯이 더 지나쳤다.

이샤르는 아직 안 늦었다고 생각했다. 헤르시스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제가 막사에 가 보겠습니다.”

“……막사?”

헤르시스가 관자놀이에서 손을 떼곤 이샤르를 돌아보았다. 이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폐하께서 이러시는 거 황후 폐하 때문 아닙니까?”

근거는 없었지만 그 이유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제가 가 보겠습니다. 막사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무슨 일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선 달리십시오.”

이렇게까지 알아듣게 얘기했으면 제 말을 들으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헤르시스가 돌연 말 머리를 돌렸다.

“폐하!”

이샤르가 헤르시스를 쫓았다.

순조롭게 달리던 젊은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역주행해 오는 헤르시스를 발견하고서 고삐를 당겼지만, 말이 미처 멈추기도 전에 헤르시스는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없었다.

이샤르는 헤르시스가 뚫어 놓은 길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통과하며 속도를 높인 끝에, 간신히 그를 따라잡아 말을 걸 수 있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폐하?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없어.”

말발굽 소리에 묻혀서 끝말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이샤르가 다시 소리쳤다.

“예? 뭐라고요?”

“황후는 막사에 없다고!”

헤르시스가 한쪽 고삐를 잡아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샤르의 시야에서 헤르시스가 사라졌다.

***

헤르시스는 리즈가 막사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귓속을 기분 나쁘게 울리는 이명과 머릿속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통증이 바로 그 증거였다.

작년 이맘때쯤 똑같은 통증을 느끼고 몇 시간 뒤에 리즈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었다.

“제기랄.”

그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욕을 퍼부었다.

어떻게 그녀를 혼자 돌려보낼 생각을 할 수 있지? 대체 뭘 믿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말에 거짓이라곤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승부에 눈이 멀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합리화한 것 같기도 했다.

항상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그녀가 그렇게 순순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유혹적인 숲길을 눈앞에 두고선 더더욱.

“이러니 내가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어?”

고삐를 쥔 손마디가 새하얗게 불거졌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자 곧게 뻗은 자작나무 산책로가 나왔다. 드리운 나뭇잎 사이로 비춰 든 햇살이 바닥에 금빛 그물을 그려 놓았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하지만 헤르시스에겐 이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자신의 주의가 소홀했던 순간마다 리즈의 신변에 위험이 닥쳤던 일만이 가득했다.

헤르시스는 말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며 고삐를 크게 휘둘렀다. 하얀 반점 말은 명마답게 모든 자극을 묵묵히 인내하며 주인을 빠르고 신속하게 날랐다.

하지만,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헤르시스가 고삐를 당기니 말이 앞발을 살짝 치켜들며 멈춰 섰다.

그의 눈이 갈림길 양쪽을 왔다 갔다 했다.

리즈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말발굽은 어느 쪽으로도 찍혀 있었다. 당연했다. 이곳은 말 산책로로 이름난 명승지였으니.

“리즈!”

그가 아내를 외쳐 불렀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직감에 따라야 했다. 그는 직감이 좋은 남자였으니 이런 것쯤은……

“젠장!”

헤르시스가 다시 한번 스스로를 욕했다.

그토록 정확하다 자부하는 직감인데도 리즈와 얽히니 쉽사리 확신할 수가 없었다.

왼쪽 길은 편백나무 숲길이고 오른쪽은 개울이었다. 리즈는 어느 쪽으로도 갔을 것 같았고, 확률은 반반이었다.

한순간의 선택이 리즈의 안위와 직결된다 생각하자 헤르시스는 생애 처음으로 무력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쪽의 가능성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다른 쪽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만약 버린 쪽이 선택해야 마땅했던 길이라면 그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세상도, 자기 자신도.

그가 다시 박차를 가하려던 때였다.

“폐하!”

이샤르가 나타났다.

“황후 폐하는 찾으셨습니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가 물었다. 헤르시스의 스타베팅 안도감이 스쳤다.

“이샤르.”

그가 대답 대신 지시를 내렸다.

“너는 저쪽을 찾아. 나는 이쪽을 찾아볼 테니.”

이샤르는 헤르시스가 손끝으로 가리킨 갈림길을 보았다.

영민한 그는 되묻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가 한쪽 고삐를 잡아당겨 말 머리를 틀었다. 헤르시스는 다른 쪽 길을 향해 움직였다.

흙바닥을 세차게 구르는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숲길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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