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6화

스타베팅 차량의 콘솔 박스를 여니 지도가 들어 있었다.

빛바랜 표지의 도로 안내 지도.

골동품 중의 골동품이다.

이전에 오프로드 차량을 사용하던 조직원이 참고삼으려고 어디선가 구해 왔나 보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아날로그로라도 길을 익히려고 한 노력이 가상하다.

하지만 과거의 지도는 의미가 없다.

과거에 만든 도로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기에.

비교적 피난민이 적었던 도로를 택했는데도, 간간이 도로 위에 버려진 폐차가 나타나면서 앞길을 막았다.

폐차에 의해 길이 막힐 때마다 도로 옆의 비포장지대를 거쳐서 빙 돌아가야 했다.

주행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 무렵.

어둠 속에서 형광색 안광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뮤턴트가 차량을 주시하고 있다.

성준은 차량 라이트를 끄고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다가 천천히 떼어 기본 속도로 달리게끔 내버려 뒀다.

가속기에는 일절 발을 대지 않고, 핸들을 살짝살짝 틀어서 방향을 조절했다.

“키이이. 키이이익.”

몇몇 뮤턴트가 움직이는 쇳덩어리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오늘은 달이 밝다.

보고 싶지 않아도 놈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썩어 문드러진 피부.

짐승처럼 안광을 발하는 눈동자.

팔꿈치와 무릎 관절을 역방향으로 조립한 마네킹처럼 기이하게 꺾여 있는 팔다리.

겉보기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취객의 모습 같기도 하다.

망가진 모습을 두고 생존자들은 놈들을 이렇게 부른다.

폐인급 뮤턴트.

뮤턴트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하는 개체이자, 가장 머릿수가 많은 개체이기도 하다.

뮤턴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중 8할은 폐인급 뮤턴트가 된다.

전투력은 개체마다 제각각이다.

젊은 남성이 뮤턴트가 되면 젊은 남성급의 능력을, 늙은이가 뮤턴트가 되면 늙은이급의 능력을.

평범한 인간과의 차이점이라면 놈들은 높은 공격성을 띠고 있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부분을 꼽을 수 있다.

“키익, 키이이익.”

“킥. 킥. 킥.”

차창에 들러붙은 뮤턴트의 입에서 손톱으로 칠판을 긁었을 때나 날 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변형된 뼈가 목 안에서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긁는 소리다.

성준은 차가 뮤턴트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천천히 전진했다.

뮤턴트가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피 냄새를 맡았을 때.

커다란 소음을 냈을 때.

적의나 공포 등의 감정을 감지했을 때.

반대로 말하면 세 가지 경우를 모두 배제하면, 매우 느리게나마 뮤턴트 앞에서 이동할 수 있다.

차량에 관심을 보이던 뮤턴트가 흥미를 잃고 물러나고, 새로운 뮤턴트가 차량에 달라붙으며 성준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공격성을 띠는 뮤턴트는 한마리도 없었다.

적의나 공포는커녕, 그 어떠한 감정도 감지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성준은 폐인급 뮤턴트가 달라붙든 말든 묵묵히 전진하면서, 머릿속으로 브로커의 위치를 가늠했다.

브로커가 강남으로 향하고 있다면 현재 판교 근처에서 차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유통연합 소유의 이동식 쉘터에는 ‘거신의 파편’이라는 부품이 설치되어 있다.

오래전에 거신급 뮤턴트를 쓰러뜨렸을 때, 거신급 뮤턴트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시에 몇몇 이들이 파편을 회수하여 연구 및 개발에 나섰고, 그 결과 ‘거신의 파편’을 소지하고 있으면 약하디약한 하급 뮤턴트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폐인급.

야인급.

초인급.

거신급.

사도급.

거신의 파편을 소유하고 있으면 초인급 미만, 즉 폐인급과 야인급 뮤턴트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

정확히는 폐인급과 야인급 뮤턴트들이 거신급의 기척을 감지하여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신의 파편이 설치된 이동식 쉘터라곤 해도 야간 운행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야간 운행을 하다가 초인급 뮤턴트의 이목이라도 끌게 되면 손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이동식 쉘터가 먼저!’… 가 유통연합의 모토이기에, 야간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시동을 꺼야 한다.

이동식 쉘터는 멈춰 있는 반면, 성준의 차량은 느리게나마 움직이고 있다.